프로덕트 디자이너에서 마케터, PO까지

2026-02-23 · KO

나는 약 7년이 넘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해 왔다. 그러다 회사 전략으로 실험적인 해외 사업을 시도하는 글로벌 스쿼드가 꾸려졌고, 나는 개발자 두 명과 디자이너 한 명뿐인 팀에서 유일한 디자인 실무자가 됐다. 문제는 마케터도 없고 PO도 없다는 것. 그래서 “일단 네가 해봐”라는 말과 함께 마케터를 겸직하게 되었다.

글로벌 스쿼드 협업 장면 _사진: “desk work” by daiya

디자이너가 마케터 모드를 켰을 때

처음엔 소재 세팅이 뭔지도 몰랐다. 마케팅 팀에 붙어 광고 소재 준비부터 데이터 리포트 읽는 법까지 꼼꼼히 물어봤다. 신입 퍼포먼스 마케터처럼 캠페인 구조를 쪼개고, 국가별/채널별 성과를 비교하며 유저 페르소나를 다시 그려봤다.

디자인이 주관이 아니라 데이터로 검증되는 과정이 이렇게 생생할 줄 몰랐다. 어떤 카피에서 전환율이 뛰는지, 어떤 온보딩 플로우가 이탈을 줄이는지 직접 보고 나니, 프로덕트 개선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마리가 쌓였다. “유저를 이해한다”는 말을 데이터와 행동으로 증명하게 된 셈이다.

디자이너가 PO 모드를 켰을 때

글로벌 스쿼드는 일본 론칭까지 잘 흘러가는 듯했다. 그런데 PO가 없으니 제품 기획이 산으로 가는 일이 잦았다. 개발자는 구현에 집중하고 싶어 하고, 대표는 큰 그림을 점검하길 원했지만, 그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잡아줄 사람이 없었다.

PO의 필요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, 결국 나에게 또 한 번 공이 넘어왔다. 디자인 실무와 마케팅을 계속하면서 PO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. PO가 할 일은 무엇인가? PO는 미니 CEO 다. 제품 개선이나 유저 유입만 챙기면 끝이 아니라, 시장에서 이 제품을 어떻게 성공시킬지 거시적으로 봐야 한다.

즉, 매주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다시 정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.

겸직이 남긴 것들

지금도 나는 PO를 겸한 디자인 실무를 하고 있다. 솔직히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. 하지만 확실한 건, 디자이너-마케터-PO를 넘나드는 경험이 매번 큰 공부가 된다는 점이다.

다음 목표는 “PO가 해야만 하는 일”을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. 시장, 팀, 제품을 잇는 접점을 더 명확히 만들고, 더 나은 PO가 되어보고 싶다. 겸직은 힘들지만 동시에 빠르게 성장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.